인류의 전쟁사와 배경이 되는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전쟁하는 인간>의 작가 김준형을 만났다.
우리가 왜 전쟁하는 인간이 아닌 평화하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 알아보자.
오늘날 국제관계는 더는 개인의 삶과 관련이 없는 먼 얘기가 아닙니다. '세계화'라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국가들은 밀접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고, 국제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즉각적으로, 직접적으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칩니다.
중동정세가 불안해지면 석유 가격이 오르고,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에서 환율이 오르고 주식시장이 흔들립니다. 미국에서 어떤 대통령이 선택되는가에 따라 큰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한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고립하여 살기 더 어려운 나라입니다. 경제에 무역이 끼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며, 남북이 분단된 채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초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어서 국제정세의 변동은 생존과 직결됩니다.
역사적으로도 발칸반도와 함께 ‘지정학적 저주’라고 불릴 만큼 시대가 교체되는 시점마다 전쟁을 포함한 거센 외풍을 겪어왔다는 점에서 대외환경에 대한 관심을 놓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청소년 때부터 국제관계에 대한 지식을 쌓아 잘 준비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미래는 물론이고 국가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전쟁으로 단박에 문제를 해결하면 될 것 같은 유혹에 빠집니다. 그러나 역사상 어떤 전쟁도 깔끔하게 문제를 해결한 적은 없었습니다.
전쟁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더 큰 문제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 제1의 초강대국 미국도 월남전에 발을 잘못 들여서 15년을,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10년 이상 지루한 전쟁을 했으며, 결과도 명확한 승리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왜 매번 억지를 부리고 도발을 일삼는 북한에 끌려다니며 양보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과, 양보와 협상은 북한 정권의 호전성만 키워왔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고까지 말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내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북한보다 가진 것이 더 많고, 따라서 잃을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조셉 나이는 평화는 산소와 같아서 있을 때는 소중함을 잘 모르지만, 없으면 그 대가는 죽음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군사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서열(계급)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일하는 역할이나 분야로 보지 않고, 군대에서 계급 따라 줄을 서는 것처럼 나눕니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명령하면, 하급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어기면 폭력을 행사합니다.
가정, 학교, 직장을 포함해서 곳곳에 군사문화가 만연합니다. 가정에서 아빠가 제일 높고, 다음은 엄마, 형, 누나로 계급이 정해져 있고, 형과 동생이 싸우면 누가 잘못했는지 따져볼 생각도 없이 "형한테 그러면 못 써."라는 식으로 얘기합니다.
학교에서도 선후배 관계가 계급이 되어 폭력이 행사되고, 심지어 교사 역시 학생을 부하처럼 대하고 폭력을 행사합니다.
직장에서도 직책이 높다는 이유로 직원을 부하나 노예처럼 부리고, 폭력을 행사합니다.
몇 년 전 대한항공 회장의 딸이자 부사장이 기내서비스를 문제 삼아 비행기를 멈추게 하고 사무장을 내리게 한 사건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런데 두려운 것은 이런 군사문화의 악습을 극기체험 또는 우애나 예의로 포장해 장려한다는 점입니다.
어린 학생이나 여성을 해병대 체험캠프에 가게 하고, 기업연수를 군대식으로 합니다. MBC의 인기 프로그램인 '진짜 사나이'같이 현실과는 다른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병영생활로 왜곡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 결과 군사문화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폭력사태나 비극적인 안전사고가 터지기도 합니다
우선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야 합니다.
이 말은 폭력 없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폭력으로 희생당하고 있거나,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언제나 살펴볼 수 있는 민감함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 또는 내 가족이 폭력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관해 관심이 있어야만 폭력을 추방할 수 있습니다.
폭력에 대한 감수성 키우기와 반드시 함께 가야 할 것은 폭력을 받아들이지 않는 단호한 결심입니다.
1999년에 개봉한 「컵CUP」이라는 영화에서 큰스님이 월드컵에 빠져 수행을 게을리하는 동자승을 불러 꾸중하듯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는 걷기 편하게 하려고 길에 거죽을 씌우려느냐?"
그러자 동자승은 "아닙니다, 스님. 하지만 제가 가죽신을 신을 수는 있습니다." 재치 있는 대답에 만족한 큰스님은 "그래, 네가 맞다. 땅에 거죽을 씌우는 것이나 네 발에 가죽신을 신는 것이나 매한가지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쟁을 완전히 없애기란 마치 온 세상 땅덩어리에 거죽을 씌우는 일과 같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동자승이 가죽신을 신듯, 내가 몸담고 사는 곳부터 평화를 심어야 합니다.
주어진 평화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가능한 곳에서부터 폭력을 반대하고 평화운동을 실천해야 합니다.
친구나 이웃과 뜻을 모으는 데서 시작하면, 그것이 점점 커져서 한반도 평화에, 나아가 동북아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